경주시 사정동에 자리한 흥륜사는 아도화상이 미추왕의 허락을 받아 초가를 짓고 불법을 강연하였던 신라최초의 사찰이다. 왕이 죽자 폐허가 되었으며, 그 후, 이차돈의 순교와 함께
진흥왕(544)은 천경림에 사찰을 중창하여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는 사명을 내렸다. 또한, 금당(金堂)을 완공하여 순교자 이차돈을 포함한 신라 십성(十聖)을 모시고, 백성들의 출가를 허락하였다.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은 법공(法空)이란 법명으로 출가하여 스스로 분소의를 입고 흥륜사에 머물렀으며, 이에 왕의 불심을 본받은 왕비도 영흥사로 출가하였다. 진흥왕 역시 왕위에서 물러난 후, 삭발하고 흥륜사의 주지가 되었다.
신라 대가람 흥륜사는 조선시대 큰 화재로 소실되어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었으나, 순교 성지를 복원하는 것이 후손된 도리라 여긴, 향곡스님과 비구니 원만스님의 원력으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혜해(慧海,93세 천경림선원 현,선덕)스님을 은사로 출가의 길에 들어선 원만스님은 1971년 주택가로 변해버린 천경림 일대 폐사지 5000여 평을 매입하고, 대웅전, 금당, 요사채 등을 건립하여 신라의 법등을 다시 밝혔다.
천경림 선원을 개원하여 흥륜사를 비구니 선수행 도량으로 변모시킨 선덕 혜해스님은 올, 하안거에도 20명의 납자를 제접하며 금당의 문고리를 단단히 잡고 있다. 하루 12시간 정진과 5월 한달은 가행정진으로 엄격하게 산문 출입을 금하는 단촐한 일정이지만 고독과 싸우며 침묵으로 화두를 다잡는 보이지 않는 몸부림이 연속되는 시간이다.
화두와 함께 살아가는 삼백 예순 다섯 날, 백팔 번뇌를 녹이는 신라 십성의 푸른 설법이 구슬처럼 청아하다. 금당 좌복에 마음자리 내려놓고 단호한 발자국을 남긴 수많은 선승의 체취가 꽃향기처럼 전해진다.
선방 안을 들여다 본다. 선정에 든 납자들의 눈매는 호수처럼 맑고 고요한 가운데, 내안의 나를 찾아 심연의 미로 속을 뒤지는 치열한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석달의 여정에 동참한 댓돌위의 고무신도 삼복더위를 잊은 채, 삼매에 들었다.
초대 조실로 주석한 향곡스님이 감나무 아래에서 야단법석을 자주 열었던 천경림 선원, 나뭇잎에 내려앉은 바람이 선승의 향기를 고이 모셔온다.
‘무자’ 화두를 들고 70여년 참선수행 외길에서 한 번도 안거를 거른적 없는 혜해스님은 금강산으로 출가한 비구니스님 중 유일하게 살아계시는 노스님이다. 성철, 향곡, 효봉, 자운, 혜암스님 등 당대 최고의 선지식 회상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오롯이 수행납자의 길만을 걸어왔다. 비구니계에서 수행과 덕망이 높은 최고의 대덕으로 꼽히는데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노스님은 한국 현대 불교의 비구니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증인이기도 하다.
낮에도 호랑이가 나온다는 깊은 산속 월정사 서대에서 홀로 용맹정진에 들었던 굳센 정신력으로 전국 선원을 찾아다니며 오직 공부에만 매진해온 70여년 세월이다. 좌복위에 앉으면 하루종일 꿈적도 하지 않는다는 노스님이 좌선에 든 어느날, 금당에서 사정동 일대를 훤히 비추는 붉은 빛이 발산되었다. 절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착각한 대중과 동네사람들이 몰려들고 소방차까지 동원되었던 일화는 비구니스님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세납 93세의 노스님은 현재까지 선방에서 대중과 함께 정진하며 예불은 물론, 발우공양과 대중 울력에도 동참하신다. 혹, 예불을 빠트리게 되면 공양도 거르는 철저하게 엄격하고 흐트러짐 없는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순교 성지라는 역사적 사실에 의거하여 거듭 태어난 흥륜사, 정확한 위치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지만, 흥륜사 창건을 위해 이차돈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신라의 왕과 왕비가 세속의 모든 부귀영화를 훌훌 벗어 버리고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난 기적의 성지, 이차돈의 값진 희생으로 중생을 보듬는 수승한 불법이 우뚝 세워질 수 있었다.
화려한 전각은 세월속으로 사라졌지만, 하얀 꽃비의 은은한 향내는 불국토를 이루었고 신라의 석등은 부러져 흔적이 없어도, 불법은 꺼지지 않고 생생히 살아있다.
굳이 진실을 강요하지 않아도, 향기가 바람을 거스르지 않듯이 경주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얼굴무늬 수막새의 오묘한 미소는 이미 세상과 하나가 되었다.
묘한 매력으로 나도 덩달아 웃음 짓게 하는 신라 천 년의 미소가 경주 박물관으로 옮겨간 그 자리에, 금강산 옥수처럼 한없이 맑은 혜해 노스님의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