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시 천성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내원사는 유구한 역사와 기품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서 송고승전宋高僧傳에서 전하는‘해동원효海東元曉 척판구중拓板救衆(원효가 판자를 던져 중생을 구함)’이라는 신비로운 창건 설화와 맥을 같이 한다.
척판암에서 선정에 들었던 원효 대사는 중국 태화사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예견하고 판자를 던져 천 명의 대중을 구했다. 목숨을 건진 대중들이 원효 대사를 찾아오자 대둔사를 창건(646년)하고 상, 중, 하 내원암을 비롯하여 89개 암자를 세워 천 명의 대중이 머물수 있는 도량을 건립하였다. 천 명의 대중 가운데 988명은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후원소임을 맡았던 12명 중 8명은 대구 동화사에서 깨달아 팔공산이라 불리며, 나머지 4명은 문경 대승사에서 도를 이루어 사불산이라고 부른다. 원효 대사가 상내원암에서 대중들을 모아 화엄경을 설한 자리를 화엄벌이라고 하며, 천성千聖산의 유래도 천 명의 스님이 모두 깨달음을 얻어 붙여진 이름이다.
대둔사의 하내원암 자리에 중창된 현 내원사는 1898년에 유성 선사가 수선사를 창설하고 사명을 내원사로 개칭하였으며, 동국제일선원이라 명명한 후 선찰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1900년 여름, 경허 선사가 다녀가 선풍을 진작시켰으며 법제자 혜월스님이 조실로 주석하면서 운봉, 고암. 경봉, 향곡 스님 등 한국 선불교의 맥을 잇는 기라성 같은 선지식을 배출한 도량으로 북방의 오대산 청량선원과 쌍벽을 이루며 남방 선찰의 면목을 과시하였다.
한국전쟁으로 전소되어 폐허가 된 도량에 1958년 수옥 스님이 비구니 납자들의 수행공간으로 선해일륜을 중창하여 동국제일선원이 재 개원되었다. 천 명의
성인을 배출한 원효 대사의 법맥이 흐르는 수행도량에서 법희, 선경 스님 등 수많은 비구니 납자들이 용맹정진에 몰두하였다. 1979년 18명의 납자가 3년 결사를 시작하여 1999년까지 여섯 번 회향을 하였으며 그 선풍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1년 내내 쉼 없는 정진이 이어지는 동국제일선원은 33명의 납자가 하안거를 지냈다. 현재 산철결제에 든 8명의 납자들은 하루 10시간씩 정진하며, 천 명의 성인을 또 하나의 화두로 삼아 마음밭을 일구고 있다.
조실로 주석한 경봉 스님이“산이 만 석, 물이 만 석, 집이 만 석”이라고 찬탄한 천혜의 환경조건을 갖춘 동국제일선원은 불조의 진리를 깨치고자 은산철벽을 뚫는 비구니 납자들의 열기가 가득한 선불장이다. 완벽한 황금비율로 건축미를 자랑하는 선해일륜과 세월의 흔적을 깨우고 말끔히 단장된 선나원의 편액이 수행중심의 선찰임을 대변
하고 있다.
“내원사는 원효 대사의 창건 진면목과 사상을 퇴색시키지 않고 선기 넘치는 도량으로 그 옛날 그대로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주지 지형 스님은“걸망만지고 다니다가 직접 살림을 맡아 보니 외호자의 입장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 같다. 소견이 꽉 막힌 상태에서는 화두가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보아야 소견도 트이고 정진에도 진취적일 수 있다”고 하신다.
향곡 스님이 화두를 내려주시고 장시간 법문으로 공부의 길을 터 주셨다는 스님은 “내원사는 향곡 스님이 16세 어린나이로 출가하여 공양주를 사시면서 초견성한 곳으로 유명하여, 지금도 후원에서 공덕을 지으려는 스님들이 잇따르고 있기에 선원 외호에 큰 힘이 된다. 수시로 오셔서 좌담법문과 경책을 놓치지 않으셨고 언제나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셨으며, 입적하시기 전까지도 내원사에 들러 납자들의 안목을 틔우기 위해 힘을 기울이셨다. 특히, 소쩍새 소리를 좋아하셨던 향곡 스님이 소쩍새 소리에 이끌려 계곡 속으로 홀연히 발걸음을 옮기면 오조가사를 두른 대중들이 한 줄로 서서 향곡 스님의 그
림자를 밟으며 그 뒤를 따르던 모습은 천상에 펼쳐진 그림 같았다”고 회상을 떠올리는 스님
의 얼굴에서 선승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배어난다.
눈 푸른 선객들의 형형한 구도의 눈빛을 모아 깨침의 경지로 이끌어 가는 원효 대사의 설법에 취한 화엄벌은 두두물물 진진찰찰 부처 아님이 없다. 억새 위에 내려앉은 하얀 바람들이 혼란스런 세상의 번뇌를 말끔히 쓸고 간 자리에 새로운 마음꽃이 피어나고 있
다. 천 명의 대중을 화엄의 세계로 인도한 원효 대사의 숨결과 천 송이 연꽃으로 장엄한 내원사 동국제일 선원에서 피어나는 진리의 향기는 멈춤이 없다. 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 발길 닫지 않은 곳이 없었을 수 많은 선승들의 흔적 위에서 시공을 초월한 소중한 인연
에 두 손 모으며 편안한 마음 차곡차곡 채워 넣으며 산문을 나선다.